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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자취/시와사진

어머니와 은행나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은 받은 날 아침. 그날이 특별한 것은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날이었다. 아침에 TV 중계를 보고 있는 중에 연락을 받았다.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일기에는 오늘을 '새롭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 어머니와 은행나무 ]


아침 눈을 떴다

그리고 한참을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렇게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맞았다.


오늘 문재인 대통력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다는 날.

TV를 켜고 방송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큰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단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돌아가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순간 나는 언제 어머니와 통화했더라..하고

핸드폰 흔적을 찾았다.


그제 였다.


그날 어머니의 음성이 생생하다.


어머니께서는 옻순이 폈다며,

전화했다는데

그 말소리에 자식들이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주 시골에 내려가겠다고 했더니 무척 기분 좋아 하셨다.

내려가기로 한 그날이 바로 오늘인데..


어제 전화 한통 못 드린 게 못내 아쉽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시면서도

다시 건강을 찾으시는 모습을 보며

자식들은 어머니 건강에 대한 걱정에 차츰 소홀해졌다.


서운했을까?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전화를 끊을 때마다

이런말을 했다.


'사랑합니다'

나는 처음에는 쑥스럽고 민망했다.

하지만, 차츰 그 말에 익숙해져

전화를 할 때면 '어머니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지금 말해본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마 당신의 죽음을 알고 계셨으리라.

어느 날 영정 사진을 찍었다며,

잘했는지 모르겠다며 물었다.


아름답다고 말 한마디 해 드릴걸..

후회가 된다.


이제 신덕마을 은행나무 아래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 슬프다.


50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

아이처럼 안길 수 있는

어머니의 품이 없어졌다.


시골에 갈 때면

은행나무 아래 쉬고 계시는

어머니가 놀라며 반겨주는 모습이

너무 좋아

나는 가끔 시골에 갈때면

연락도 없이 내려가곤 했다.


"어~! 용이가~"

그 모습이 생각난다.


팔남매 키우느라 고생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제 어머니 장례식을 준비하러 하동으로 내려가야겠다.





2018.04.27 

아콤파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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