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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자취/나만의풍경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Weltgeschichte to go) 속에서 종교란 어떤 의미였을까?

 

가끔.. 책을 읽고, 이런 글을 적다 보면, 내가 조금은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좋다.

 

 

이탈리아 북부 메라노 '공주의 성(Castello Principesco)'에 있는 '예수상' / 여행발자국동행

 

 

우리가 아는 '세계사'는 46억 년의 인류 역사에는 고작 몇 천년에 불과한 기록서다.

 

기원전 몇 백 년과 예수 탄생 이후로 2천 년의 시간을 '세계사'의 전부인 듯 이야기하는 현 인류를 보며, 우아하게 비꼬는 저자(유발 하라리)의 글이 인상적인 책,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을 읽고, '종교'가 세상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며, 지금부터 1만 년 후... 12020년에 본 지금의 세상은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해 보았다.

 

가진 것보다 덜 원하면 부자, 더 원하면 가난해진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으로 알려진 알렌산더 폰 쉰부르크(Alexander von Schonburg)는 그의 친구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저서 '사피엔스'를 읽고 영감을 얻어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을 저술했다고 한다.

 

 

 

 

계시 종교를 기점으로 인간은 '자연에 존재하는 사물'에 의존하다가 '신이라는 허상'을 믿기 시작한다.

 

어쩌면 인류의 조상은 현대의 우리보다 더 똑똑했는지 모른다.

 

현대인은 내 앞에 있는 음식물을 보고,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이 될지 모른다는 예감으로, 배가 고프지 않음에도 음식물을 가득 채워 먹는 존재지만, 인류의 조상은 그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모사피엔스를 자극하는 것은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즐거움'인데, '소원을 성취'하게 된 호모사피엔스는 '권태'에 빠진다.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행복해지기는 그만큼 더 어렵고, 기대했던 것을 누리게 되어도 행복은 상승하지 않았다. 오로지 인간에게는 '성취'에 대한 '기대감' 만이 '행복감'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폰 쉰부르크의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에서는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지식이 대부분 오류가 있었고, 틀렸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의 세계사를 말해주면서 말이다.

 

인류는 46억 년이란 긴 시간에서, 300만년 전에 유인원으로 등장한다. 우리와 외모가 같은 인간은 고작 약 15만년 전에 나타나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 인간은 고작 약 7만년 전에 등장한다.

 

46억 년이라는 세계사를 눈앞에 떠올린다면, 약 7만년 전에 인류가 태어났다는 것은, 100분짜리 세계사 영화에 견주어 본다면, 일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우즈벡 히바, 유대교의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의 소재가 되었다고 하는데... /여행발자국동행

 

 

 

 

'세계사'는 지배자에 의해 쓰인 '이기적인 기록서'일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후세는 영웅담을 기억하게 된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수백만 명을 죽이면 정복자가 된다.

 

할리드 아사드는 50년 넘게 시리아 사막 도시 팔마라(Palmyra, 사막의 여왕 제노비아가 3세기경 영광스러웠던 고대 이슬람의 전성기를 꽃피웠던 곳)에서 고대 로마 유적지를 관리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슬람 지하디스트 무장 단체가 2015년 5월 팔미라에 쳐들어 왔을 때, 82세의 아사드는 도망치지 않았다. 고고학자였던 아사드는 납치당한 뒤 고문 끝에 그가 평생을 바쳐 보존에 힘썼던 기둥에 참수당한 시신으로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는 잊혔다.

 

기원전 356년, 세계 7대 불가사의 하나인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불태운 방화범이지만 경멸을 받고, 정복활동에서 고대 도시를 파괴하고, 민간인을 학살하고, 여자와 아이를 노예로 삼고, 정복지의 민족을 말살하며 수천 개의 신전을 파괴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역사책에서 추앙을 받고 있다.

 

오스트리아 공주로 파리에 설치된 단두대에 오르면서 사형 집행인의 발을 밟자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했던 사람은 무지(無知)한 공주로 취급한다.

 

역사 속에서 '영웅'은 단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기록되었던 것이다.

 

 

 

 

 

 

'종교'에 의해 만들어지고, 쓰인 '세계사'는 1만년 후에 어떻게 기록될까?

 

 

인간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했던가?

 

올바른 역사였다면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라면, 다른 세계를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종교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지배하고자 하는 욕심이 '세계사'의  흐름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지배자에 항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종교'는 지배자와 협력 관계가 되면서 더 강력한 '종교'가 되고,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그것이 '세계사'라고 기록되었고 교육되었다.

 

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종교'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코로나19가 발생되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종교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성장 발전했다. 중세와 근대에 와서는 종교가 개인의 죄를 돈으로 씻을 수 있다고 하더니, 현대에 와서는 생명을 지켜준다고 믿게 한다.

 

그런데 정녕~! 코로나19 시기에 종교가 개인의 생명을 지켜주었던가?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종교'에 의지하며, 그 보이지 않는 신이 '생명'을 지켜준다고 믿는 사람들...

 

이유가 무엇일까?

 

종교를 지배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이들은 '결속과 종속'을 위해, 업무를 정확히 구분, 분장하여 민중을 세뇌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기독교 세상'을 만들게 된 것이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계시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는 인류가 만든 모든 이데올로기의 선조다. 그래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을 빼놓고는 마르크스 사상과 사회적 프로젝트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 3개의 종교 중에서 유독 관심이 더 가는 종교가 있다. 이슬람교다.

 

이슬람교가 유대교와 기독교와 다른 것은 종교적 프로젝트뿐 아니라 사회적 프로젝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에서 본 이슬람 모스크 / 여행발자국동행

 

 

 

세 종교중, 유독 이슬람 만이 '신'보다는 '인간'을 우선시했다는 사실~!

 

이슬람에서는 신이 우리를 끔찍이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가기 전 지상에서 행복하고, 올바른 삶을 영위하는 것은 곧 '신의 섭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최초 취지에서 벗어난 방향으로 성장, 죄를 지어도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 간다며 권력자에게 힘을 실어 주게 되면서, 그들이 기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당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천국에는 가고 싶었지만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지상에서 나쁘게 살라고 하는 말은 없었겠지만, 하나님이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하셨으니...

 

이슬람교에서는 '세상'을 가리켜 평화의 집(다르알 이슬람)이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와 유대교의 눈에는 이슬람교가 매우 낯설게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슬람교의 교리가 우리의 삶에 더 적합한 이야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세계사 속에서 기독교의 논리에 공격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12020년, 2000년의 세계사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종교적 차이는 정복의 시기에 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슬람교는 정복한 곳을 '포용'하는 방법으로 성장했지만, 기독교는 이단으로 '파괴'하는 방법으로 세력을 키웠다.

 

그 결과는 뻔했으리라.

 

'포용'보다 '파괴'하는 힘을 인간은 두려워했기에, '기독교'는 군사력을 가진 권력과 힘께 공생하며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세계사'는 중세, 근대, 현대를 거치며, 2000년 동안 '기독교라는 종교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기록서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바라보지 않으면, 자칫 잘못된 '교훈'을 얻어, 잘못된 사고에 근거한 '뜻밖에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2020년에서 1만 년을 더해, 12020년이 된 지구에서 쓴 세계사에는, 2020년의 과거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세계사'라는 것이 '웃을 수밖에 없는 농담'인 이유다.

 

 

 

 

2020.09.25 여행발자국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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