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국내여행

윤선도의 섬.. 보길도 부용동 고산의 흔적

 

보길도 해안 트레킹 후, 바로 고산 윤선도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했다.

 

보길도는 윤선도의 섬..

 

나는 윤선도가 되어, 왜? 그가 이곳에 살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윤선도가 일탈을 꿈꾸고 찾은 보길도의 황원포. 그 포구에서 걸어 들어왔더니 수목이 울창하고, 평풍처럼 둘러 싸인 세상과 연을 맺을 수 없는 곳으로 보고 장착(1637)을 결심했으리라.

 

그리고 그곳을 부용동이라 명하고, 낙서재를 짓고, 마루에서 언제나 신선을 볼 수 있도록 '동천석실(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곳)'을 만들었을 것이다.

 

풍류를 좋아했던 양반이었기에, 세연정을 짖고, 그곳에서 사시사철 무희들을 불러 여생을 즐겼으리라 싶다. #윤선도 #부용동

 

 

 

 

 

고산 윤선도, "인생은 참으로 짧고, 무상한 것이니.. 세상 밖인 듯 한가로이 느린 시간을 즐겼으리라."

 

 

'황원포'에서 본 보길대교(노화도-보길도)

 

 

부용마을에 들어서면, 곡수당과 낙서재가 있다.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의 주거 공간이었고, 곡수당은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휴식하던 곳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곡수당만 보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낙서재도 꼭 둘러보자.

 

 

보길도 부용동 곡수당

 

 

곡수당에는 두 칸의 건물이 있다. 그중 서재와 낙서재에서 보면 부용동 마을 건너 산 중턱에 '동천석실'이 보인다.

 

윤선도가 처음 부용동으로 들어와 격자봉의 혈맥을 잡고 낙서재의 집터를 선택했단다.

 

 

곡수당에서 본, 서재와 윤선도가 살았던 낙서재(멀리 뒤로 보이는 곳)

 

 

풍수지리를 몰라도 보길도 격자봉과 누룩바위, 산 너머 해안의 큰기미 절벽은 부용동 마을을 감싸고 있어, 평안한 노후를 보내기에 최적의 장소였으리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곡수당 서재에서 본 부용동 전경. 곡수당과 동천석실이 보인다.

 

부용동의 '곡수당'과 신선이 산다는 '동천석실'을 담다. / 여행발자국동행

 

보길도 부용동 곡수당, 이곳이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

 

 

 

두피가 가렵거나 비듬이 있다면 '바이오디톡 샴푸'를 사용하세요

 

 

 


 

 

세연정.. 고산 윤선도 물외(物外)의 삶

 

보길도 황원포 초입에 있는 세연정(주변의 경관이 깨끗하다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정자)은 윤선도가 풍류를 즐긴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13년간을 머물며 자연과 산수를 노래하다, 85세(1671)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세연정이 특별한 것은 전통적 조경 수법이 내재된 조선시대 대표적 원림 유적이기 때문이다.

 

정자의 경우, 사시사철 이곳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문을 달았으며, 구들을 놓아 바닥을 따뜻하게 한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고산윤선도 #세연정

 

 

보길도 세연정 / 샴푸는 '바이오디톡'

 

 

고산 윤선도(1587~1671) 그는 누구인가?

 

윤선도는 해남 윤씨의 대를 잇기 위해 서울 명동에 사는 백부 관찰공 윤유기의 양자(8세)로 들어간다.

 

17세(1603) 남원 윤씨 판서 윤돈의 딸과 결혼했고, 20세(1606) 장원급제를 하여 정계에 입문한다.

 

조선 중기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 시가에서 쌍벽을 이뤘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청나라와 화해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향하다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은거하기도 했다.

 

송시열과 당쟁 논쟁을 하다 탄핵을 받고 사직을 당하기도 했다.

 

1658년 윤선도는 익히 알았던 보길도로 내려와 신선의 삶을 살며 '어부사시사'등 많은 국문학적 흔적들을 남기고 여생을 마친다.

 

보길도 세연정.. 단아하고 깨끗함이 바이오디톡 샴푸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세연정의 조경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취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집 안에 자연을 그대로 담아 놓고자 했는지 물을 끌어 작은 호수를 만들었고, 호수의 높낮이를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보를 설치했고, 들어오는 물과 나가는 물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배수의 양을 달리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보길도여행 #섬여행지추천 #보길도추천여행지

 

 

세연정으로 가는 길

 

 

이번 여행에서 윤선도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물외(物外)라는 단어를 이해하고서다.

 

'세상 밖인 듯 아름다운 경치'를 말한 것으로 '세상의 헛된 욕심일랑 갖지 말고, 세상 밖에 사는 듯 한가로운 사람이 돼라'라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살고자 하는 삶의 방식과 똑같다.

 

무언가 잡으려 발버둥 치며 살았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이제는 중년의 나이로 느슨해진 삶으로 사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세연정에서 유진이와 부인.. 우리에게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비듬, 두리가려움, 두피열 제거는 '바이오디톡 샴푸'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해남 대흥사를 들렀다.

 

 

해남 두륜산에 쌓여 있는 절.. 대흥사

 

두륜산은 옛날에 대둔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 대둔사로 불렸다 한다.

 

대흥사는 백제시대 사찰로 사찰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재개발로 새로 지은 건물이 많아 아쉬웠다.

 

지금은 사찰보다도, 대흥사에 이르는 "천년 숲길"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해남 #대흥사 #천년숲길

 

 

대흥사로 가는 길

 

 

천년 숲길을 따라 걸어 사찰에 이르니.. 기대에 미치지 못한 사찰 재건축 상태를 보고 실망..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재조사가 진행 중이라는데.. 그럴 만도 하다 싶다.

 

외국의 유적지를 보면, 있는 그대로 유지를 하며, 보수해야 하는 것과 기존 것을 조화롭게 공존시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는 포클레인으로 깡그리 긁어내고, 흙은 질퍽인다고 자갈을 깔아버리고, 방금 기계로 깎아 만든 돌을 쌓고,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현대식으로 바꾸는 공사를 한다.

 

유적지를 새롭게 만들어 버린다. 아쉬울 뿐이다.

 

아마도 유적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한 사고의 차이와 전문성의 부족 때문이지 않나 싶다.

 

천년 고찰이라면, 땅에서부터 돌담에서 작은 디딤돌 하나에 이르기까지 유적의 느낌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그냥 무시~!

 

깔끔한 사찰을 만들기보다는, 오래된 고(古) 사찰의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해남 대흥사. 대륜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백제시대 사찰 / 여행발자국동행

 

 

대흥사는 대륜산이 뒤에서부터 앞쪽까지 동그랗게 둘러싸여 있다.

 

이런 멋진 곳을 무분별한 개발을 하기보다는 천년 사찰의 흔적을 잘 보존하여,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흥사 입구에 있는 사리탑

 

 

해남 대흥사 앞, 맛집을 찾아 시골 보리밥 집을 찾았다.

 

맛난 젓갈에 전라도의 감칠맛 나는 식사.. 전라도 음식은 어디를 가나 맛이 있다.

 


 

1박 2일의 보길도 여행..

 

시간이 좀 남았더라면, 해남 해바라기 공원도 가보려 했는데.. 아쉽다.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땅끝 선착장에 도착, 배를 타고 노화도(보길도)로 들어가서 섬 여행 트레킹을 했고, 윤선도의 흔적을 찾아보았으며, 해남 대흥사까지 둘러본 여행.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 그런데 이상하게 피곤하지가 않았다.

 

 

대흥사 앞에서 먹은 보리 비빔밥

 

 

여행은 현실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시간 속으로 여행을 할 수 있어 좋다. 어쩌면 지금의 '나'로만 온전히 살아야 하는 생(生)에 대해 반항이며, 생(生)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리라 싶다.

 

 

100세 건강, 20대 머릿결.. 바이오디톡

 

 

보길도 섬 여행 트레킹 동영상 _ 여행발자국 동행

 

보길도 여행. 해안 섬 트레킹 동영상(예송마을-전망대-큰구미-공룡알해변)

 

청산도 섬 여행 트레킹 _ 여행발자국동행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