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황소는 인디언이 인디언의 생활방식대로 사는 것을 원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백인들에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유재산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1888년 수우족 법안은 ‘수우족 보호구역’을 선바위와 샤이엔 강 등 6개의 보호구역으로 분리하고, 각 보호구역은 거주민 모두에게 토지를 할당하는 데 필요한 토지 총량을 배당 받는다고 규정했다. 남은 토지는 정착민들에게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앉은황소는 격렬히 반대했다. 농장을 개인에게 분배하면 부족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전통 생활방식이 심대하게 훼손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선교사 메리 콜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 부족민이 백인과 멀리 떨어질수록 더 크게 만족할 것이다. 백인은 사악하다. 나는 우리 부족의 여자들이 내가 본 백인 여자들처럼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당신이 우리 부족민에게 쓰고 읽는 법을 가르치길 원한다. 하지만 백인처럼 되면 안 된다. 그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니며, 나 역시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수우족 법안마저 지켜지지 않았으니, 인디언을 위한 배려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국 정부는 쟁기와 일소, 통나무집, 학교, 기독교 교회를 인디언 보호구역에 제공하여 유목민이자 전통 종교를 믿는 인디언을 농경민이자 기독교인인 미국인으로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전통을 하루아침에 버려야 하는 인디언에게 미래는 암담한 것이었다. 그런 인디언에게 먼 곳에서 구원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파이우트족의 워보카라는 사람의 특별한 예언이었다. 그의 예언은 믿음(정통 인디언 신앙과 기독교의 혼합)을 갖고 유령춤(Ghost Dance)을 추면 인디언은 행복한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 땅은 백인이 없는 땅, 이미 사망한 모든 인디언도 함께 사는 땅, 사냥감 등 물자가 풍부한 땅, 질병과 고통이 없는 땅, 모든 부족이 평화롭게 사는 땅이라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