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15일, 내가 호적으로 40세가 되는 날이다.
2009년 2월 16일, 경기도 광명시 광명6동 ‘우리들고시원 15호실’에서 생활한지 벌써 2개월에 접어든다. 지난해 7월 중순에 회사를 나오고 시작한 개인 생활이 벌써 7개월이 되어간다.
갑자기 오늘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살아갈 시간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미용실에 있는 작은 노트북을 가지고 왔고 글을 적고 있다. 지나온 40년의 생활과 이후에 펼쳐질 나의 또 다른 40년의 시간을 글로써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단순히 나를 과시하고자 하는 욕심에서라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작년에 회사를 나오기까지 나는 13년의 시간을 나는 회사에서 보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채로 합격한 기아자동차, 경남 창원에서 2년을 기아정기(현, 현대모비스)보냈고 2년을 여의도 기아자동차 구관 11층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기아자동차의 부도로 충북 진천의 기아전자(현 현대오토넷)에서 2년을 근무했고, 종로의 계동 현대사옥과 강남 로담코 빌딩 현대모비스에서 4년을 근무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오토넷 강남 뱅뱅사거리 랜드마크타워에서 1년, 테헤란에서 1년, 이천 하이닉스내 현대오토넷에서 1년을 근무하고 회사를 나왔다.
지금 회사를 등지고 나온 나는 가끔 다시 돌아가고픈 생각을 한다. 회사에서 매달 주는 월급에 길들여진 내가 이 짧은 시간에 모든 습관을 다 버린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기에 지금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내가 회복지수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 때 회사를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일, 지난 시간의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나의 행동에 찬사를 보낸다. 정말 남자다웠던 결단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어떤 이들도 할 수 없었던 나의 결단에 나는 가끔 놀라곤 한다. 사람들은 말했다. 왜 그렇게 했느냐고? 그 돈 많이 주고 안정적인 회사를 왜 나왔느냐고? 하지만 나는 그 때 회사를 나온 것이 나에게 주어진 나머지 40년을 다른 삶으로 채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행운이라 생각한다.
내가 나왔던 이유, 이 글을 읽는 사람도 한번쯤 나의 선택이 멋있었다고 생각하기를 바라며 적어보고자 한다.
현대자동차의 높으신 어른과 관련이 있는 회사인 삼명기계, 그 회사에서 생산한 제품이 내가 맡은 제품과 관련성이 있었기에 자연스레 회사를 알게 되었으며,그 회사의 어려웠던 경영과 영업활동에 작은 도움을 주자는 높으신 사람들의 지시 및 의견에 따라 나는 조언도 주었으며 지시에 따라 요청한 자료를 내가 만들어서 주었다. 물론, 삼명기계 회사의 임원으로 있었던 한 명의 임원이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팔면서 이것 저것 요구했기에 참 난감한 상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1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현대자동차 감사실 팀장과 직원2명이 나를 찾아 왔다. 영문도 모르고 나는 그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 사람들은 나를 취조했다.
어떤 사람과 연관되어 있는지, 왜 현대자동차의 대외비 문서를 주었는지에 대해 추궁했다. 물론, 나는 잘 알고 있다. 현대자동차 대외비 문서는 절대로 나가지 말아야 하는 자료로 그 업체에게 줄 때도 내가 만들어 상관없는 자료만 주었는데, 그 자료를 삼명기계 임원 한 명이 회사를 나가면서 관리소홀로 후임에게 주었고 후임 부장은 집에서 인터넷에 공유자료로 올렸으며 국가정보원에서 그 자료가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현대자동차 감사실에 조사를 의뢰했다는 것이다. 참 나~~ 이해되지 않는 말들, 그렇게 자리를 연명하고 싶었을까? 변명의 여지도 없는 말들 속에 나는 속으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 임원이 회사를 나가서 나에게 도움을 많이 청했는데 나는 그 사람의 도움을 단번에 거절했고 그 이유로 인해 나와 관련된 자료를 헤킹이 가능한 인터넷 공유로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고 해 본다. 몰론, 추측이지만 그 사실 하나 만으로 연관된 다수의 사람들이 곤경에 빠져 어려워했다.
그런데 어찌 지금 그 사람들은 나에게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일들은 수습하기는 커녕 남에게 피해를 주었으면 최소한 죄스럽다는 이야기는 해야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 이 모든 것은 부질 없는 것들 ,,,,,,
그 때 나는 그 모든 일을 내가 했다고, 자발적으로 도와 주었다고, 어떤 이도 관련이 없다고, 마지막으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면 내선에서 회사를 나가겠다고 했다. 그 때 그 사건이 벌어졌을 때, 혹시나 자기의 발등에 불똥이 튀지는 않을까 하며 흥분했던 사람과 발을 빼려고 했던 이들, 그리고 지신의 라인이 아닌 부류는 그 기회에 건수를 잡아 압박하려 하고, 참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 그지없다. 왜냐면 그렇게 신경전을 벌였던 사장을 포함한 임원들은 몇 개월 을 채우지 못하고 면직당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늙어 명예퇴직을 시켜야 하는 불필요한 직원들에게는 명예퇴직금을 지급하면서 퇴직을 시켰는데 정작 나는 내가 사직서를 냈다고 명예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했던 주영섭 사장, 참 어처구니 없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동시에 퇴직명단을 공개했음에도 말이다. (뒷 이야기다. 그 사람들 3개월 후에 다 회사를 나왔다고 한다. 혹 알까? 사람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언젠가는 피해를 갑으로 받는 다는 사실을 ...... 그 후, 몇 사람들은 그때 일을 이야기 하며 미안했다고 했다. 그런 분들에게는 한편으로 고마움이 생긴다.)
나를 아는 직원들은 내가 명퇴금을 받고 회사를 나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를 불명예스럽게 한 것은 단지 이것이 조금 섭섭했던 사항이다. 내 혼자만 퇴직명단으로 공개했으면 회사가 나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취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텐데 말이다.
또, 우스운 것은 내가 그렇게 방어했던 삼명기계의 부장과 사장, 그리고 다른 회사로 간 임원은 지금까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있다. 미안하지 않은 걸까? 제일 미안해 하는 사람은 나에게 지시했던 딱 한 사람, 그래도 그분은 의리는 있는 것 같다. 회사를 나오고 난 뒤에도 항상 미안해 하고 괴로와 했으니 말이다.
여하간 나는 그런 몇 푼의 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회사를 나왔으니 멋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인생을 그렇게 남에게 의지하거나 주관 없이 살지는 않을 것이다. ㅎㅎ 나는 나의 인생이 나의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멋있게 회사를 나왔으니 나는 나의 나머지 40년의 삶도 멋있게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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