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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상식

왕을 능멸하는자들의 투쟁 연산군

조선의 정치가들이 왕에게 부여하는 '조, 종'이 아닌 '군'이라 부친 조선의 10대 국왕이 '연산군'이다. 그 시대의 기록을 '실록'이 아닌 '일기'라고 했으면, '능'이 아닌 '묘'로 후세에 남겼다. 



성종의 적장자로 태어난 그는 7세에 세자로 책봉되어 12년 동안 세자 수업을 거쳐 19세에의 나이에 즉위 했다. 오랜 준비 끝에 왕위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12년간 국왕에 있다가 유배 2개월 만에 죽었다. 


12년의 세자 수업을 하며 그는 당시 권력 암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왕이 된 후에 '왕권 강화'에 주력했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어머니(성종의 첫번째 왕비 윤씨, 질투심에 눈이 멀었다는 죄목으로 폐비되어 사약을 받고 죽음)의 죽음을 복수하는 폭군으로 기억하게 만든 것은 당신 암투와 치정의 정치 권력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연산군은 '왕을 능멸하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조선왕족실록 전편에 95번이 나오는데, 연산군 일기에는 57번이나 언급된 것을 보면, 왕권에 도전하는 정치권력자들이 많았고 그들과의 치열한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왕이면서 왕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예조판서 이세좌(어머니에게 사약을 가져간 사람)가 연산군의 소매에 술을 쏟았다고, 유배를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 그를 다시 불러 복귀시킨 후 일주일 후, 일주일 후에 다시 유배를 결정하고, 한성 밖에서 다시 장형을 내린다. 그리고 사약을 받아 죽게 한다. 그리고 의금부에서는 죽은 그의 머리를 잘라 거리에 걸었다고 한다. 이런 기록은 당시 연산군이 얼마나 감정적이고 성군으로서의 자격이 없는가를 기록하고자 했겠지만 '왜 다시 복귀시켰을까?' 그리고 '왕의 결정이 며칠 사이에 바뀐다는 것이 득이 될리 없는 상황에서 일주일 만에 다른 결정을 하게 된 중대한 사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분명히 이세좌가 재임 시절 만든 법을 모두 폐지시킨 것을 보면 죽은 자의 목을 벨 정도의 큰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역사는 기록된 자료에 의해서 후세에 남게 되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세자 시절 게으른(?) 자신을 매섭게 꾸짖었던 스승 '조서지'까지 죽인다. 하지만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경남 진주에서 살았던 조서지를 압송하여 고문하다 질식사로 죽였고, 죽은 자의 머리를 잘라 철물전 앞에 내 걸었다고 한다. 기록은 '군상을 능멸한 죄'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과연 연산군이 죽이라고까지 했을까? 당시 정치권력의 암투를 감안하면 이 또한 이해관계에 얽힌 결과였고, 연산군의 폭정으로 귀결시키지는 않았나 가정할 수 있다. 


그리고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완전한 패륜인(人)으로 만든 사건이 있다. 큰아버지(성종의 형) 월산대군 이정의 처 박씨를 간통했다는 것이다. 연산군은 일찍 세자를 박 씨에게 맡겨 키웠고, 성장해 궁궐로 돌아오자 박 씨를 궁궐로 불러 돌보게 했다. 그리고 간통을 했다는 것이다. 박 씨의 동생 박원종은 정승급으로 승진했고, 누나에게 '왜 참고 사는가? 약을 마시고 죽으라'라고 말했다. 그 후 한달 뒤 박씨는 죽었다 사람들은 왕의 총애를 받은 박씨가 잉태하자 자살했다고 한다. 누나가 죽고 40일이 지난 후, 박원종은 성희안과 함께 정변을 일으켜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끌어내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고 두 달 뒤 역질로 죽었다. 12년간의 지루한 싸움은 그의 죽음으로 끝났다.


'중종반정'이 불과 몇 사람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이번 광화문 촛불집회의 기무사의 '계엄령 선포 및 촛불집회 진압'에 대한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처럼 얼마나 치밀한 준비가 되었을까 싶다. 그리고 반정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연산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을 것이다. 이런 작업은 지금보다 무척 쉬웠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역사 기록서 '왕을 능멸하는'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것은 '왕이 자신들의 정치권력에 도정했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왕을 처단했다'라는 의미로 생각된다.


6년뒤, 연산군의 아내 신 씨는 중종(성종의 둘째 아들로 연산군의 이복동생)에게 청원을 해서 무덤을(지금의 서울 방학동)으로 이장했다. 그리고 그 옆에 아내 신씨가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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