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점유율 1위인 거대 공룡기업도 경영 환경과 트렌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도태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감지하고 신속하게 전략 변화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결단력과 행동력이다. 격동이 심할수록 '마케팅 서바이벌' 능력은 필수불가결하다. '마케팅 서바이벌'은 기업의 마케팅 부서가 단기적으로 제품의 판매를 책임져야 하는 좁은 의미보다는 시장 변화를 미리 감지해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총괄적으로 기획하는 역량을 뜻한다.
타이완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HTC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문생산(OEM)이나 주문개발(ODM) 방식으로 통신기기를 만들던 무명 회사였다. 그러나 단 5년 동안 눈부신 변신을 통해 애플과 더불어 스마트폰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HTC의 성공 비결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HTC는 성장잠재력이 높은 시장을 발굴해 R&D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전체 인력의 80% 이상이 R&D 인력이었다. 지금도 전체의 20% 이상이 R&D 인력이다.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다른 업체들이 PC 및 노트북 생산에 매달리던 1990년대 말 과감히 PDA라는 새로운 시장에 발을 들여놨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함께 스마트폰을 공동 개발했다.
또 구글이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 개발에 나서자 성장잠재력을 평가한 뒤 구글과 함께 안드로이드폰의 원형을 개발했다. 훗날 HP에 합병된 컴팩이 최초로 포켓PC라는 이름의 PDA를 세상에 내놓을 때도, MS의 스티브 발머(Ballmer)가 윈도 모바일폰을 세계 최초로 발표할 때도, 구글이 최초의 안드로이드폰을 세상에 선보일 때도, 그들의 손에 들려져 있던 것은 HTC가 만든 프로토타입(prototype)이었다.
둘째 HTC는 가장 잘 나갈 때 최고의 자리를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변신에 회사 역량을 투자했다. 창업자인 왕쉐홍(王雪紅)은 대만 최고 재벌의 딸로 태어났지만, 자기 스스로 기업을 일으키는 험한 길을 택했다. 2000년대 초 윈도 CE 기반의 HP 아이팩 PDA를 독점 공급하며 엄청난 흑자를 유지하고 있을 때 HTC는 과감히 PDA시장을 포기하고 스마트폰시장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2006년 ODM과 OEM을 통해 전 세계 윈도 스마트폰의 70% 이상을 독점 공급하면서 HTC의 영업이익률은 업계 평균(5%)보다 5배 높은 경이로운 경쟁력을 유지했다.
바로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정상의 자리에서 HTC는 ODM·OEM사업을 포기했다. 직접 유통망을 갖고 HTC 이름으로 판매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 1년 만에 최초의 안드로이드폰을 시장에 선보였고, 아이폰을 맹추격했다. HTC가 사업 방향을 전환할 때마다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주가는 폭락했다. 하지만 HTC는 변신의 성과를 실적으로 보여주었고, 주가는 뛰어올랐다.
셋째, HTC는 미래를 내다보는 인맥 관리가 시장 판도를 바꿀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창업자 왕쉐홍은 HTC를 설립하기 훨씬 전 아버지 회사 계열사의 마더보드 OEM사업 영업을 맡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보따리 장사를 했다. 그는 수행원 하나 없이 10㎏짜리 컴퓨터를 끌고 홀로 열차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녔고, '언젠가 이 커다란 PC가 손안에 들어가는 기계가 되어 PC와 전화의 모든 기능을 다 해줄 것'이라는 비전을 전파했다. 왕쉐홍의 열정은 MS의 빌 게이츠(Gates)를 감동시켰고, 빌 게이츠와 맺은 교류 덕분에 MS의 윈도 CE를 공동 개발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폰 개발에 처음 참여한 것 역시 인맥을 통해서였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창시자인 앤디 루빈(Rubin)이 구글 입사 전 벤처기업을 운영할 때 HTC 저우융밍(周永明) CEO는 같은 엔지니어 입장에서 앤디 루빈과 기술적 교류를 나눴다. 훗날 구글이 루빈의 안드로이드사(社)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안드로이드폰을 개발하기 시작했을 때 루빈은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저우융밍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루빈과 오랜 기간 교류해온 저우융밍은 과감히 HTC 주력 제품인 윈도폰을 놔두고 안드로이드 진영의 첫 파트너가 됐다.
이처럼 세계 스마트폰의 강자 HTC의 눈부신 성공은 영업과 연계된 마케팅 전술 차원이 아니라 '마케팅 서바이벌'을 위한 회사 전체의 운명을 건 전략적 의사 결정과 행동력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승승장구해 온 HTC 역시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지금의 HTC를 이끈 안드로이드폰 시장은 급격히 레드오션으로 변하고 있다. 이미 20여개 업체가 안드로이드폰을 출시했고, 업체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저우융밍 CEO가 "디자인이 싸구려로 보인다"고 평가절하했던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시장에서도 HTC를 앞질렀다.
게다가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해 안드로이드폰 업체로 키우겠다고 발표하면서 HTC는 설 땅을 잃고 있다. 오랜 파트너인 MS 역시 노키아를 윈도 모바일폰의 장자(長子)로 키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 와중에 스마트폰 특허 분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HTC가 지금까지 그래 왔듯 또 한 번 과감한 변신과 투자를 통해 블루오션을 개척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참조 : 장대련·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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