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선거개혁의 새로운 바람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작되고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정치개혁 의미 엿보이는 ‘선거비용 펀드’ 모금
‘박원순 펀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중인 박변호사가 목표했던 38억8500만원의 선거자금을 펀드 방식으로 사흘 만에 너끈히 모았다. 펀드 방식은 먼저 선거자금을 빌려 쓰고 나중에 국고보전금을 받아 이자를 붙여 후원자한테 되돌려주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처음으로 시도한 바 있다. 여러모로 정치개혁 차원의 의미를 새겨볼 만한 움직임이다.
무엇보다 이 방식은 공직선거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선거에는 돈이 많이 들고 그런 판에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게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그 때문에 공직에 봉사할 뜻과 나름의 능력을 갖추고도 순전히 돈이 없어 나서길 망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결과 주로 돈 있는 사람들만이 정치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펀드 모금이 보편화되면 시민들의 공무 담임 접근성이 늘어날 수 있다.
이 방식으로 비용을 조달한다면 정치인이 돈 때문에 발목 잡히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본래 세상일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선거 때 신세를 지면 언제든 갚아야 하기 마련이다. 선거비용을 검은돈에 의존하고, 그 대가로 나중에 특혜나 이권을 제공하는 부패 구조도 척결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펀드 방식은 빌려 쓴 자금에 이자를 붙여 갚아버리면 그만이다. 참여한 사람들의 뜻을 고맙게 기억하되 그 이상으로 빚이 되지는 않을 터이니 훨씬 투명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박원순 펀드에는 어제까지 7000명이 넘게 참여했다고 한다. 제법 많은 숫자다. 낸 돈을 나중에 돌려받으니까, 그냥 후원금을 내고 마는 것에 비해 시민들이 참여하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확대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참여하지 않고 욕만 하고 있어서는 정치를 바꿀 수 없다. 공직자의 전횡은 시민들의 냉소주의를 먹고 자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선거비용 펀드는 외국에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실험 성격이 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해도 무방하다’고 할 따름이지, 제도적 근거는 아직 없다. 앞으로 정치관계법을 개정할 때 관련 근거를 정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물론 기본 방향은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되 부작용 여지를 미리 없애는 쪽이 되어야 한다.
지방선거때 유시민 첫 도입…선관위도 합법 인정
선거자금 해결·지지층 결집·홍보 효과 ‘1석 3조’
박원순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28일 불과 사흘 만에 목표했던 38억8500만원의 선거자금을 모았다. 박 후보가 펀드 방식을 통해 단숨에 선거자금 모금에 성공함에 따라 공개적으로 시민들에게 돈을 빌려 쓰고 선거비용을 보전받아 되돌려 주는 이른바 ‘정치인 펀드’가 자리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막대한 선거자금이 필요한데도 정치자금법 규정에 따라 후보등록 전에는 후원회를 둘 수 없는 정치신인들에게 돌파구가 될 수 있어, 내년 총선 때는 다양한 ‘정치인 펀드’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후보의 ‘희망캠프’는 “지난 26일 낮 12시부터 시작된 박원순펀드 모금이 이날 오후 4시에 법정선거비용인 목표액에 도달해 오는 30일까지 예정됐던 모금을 이틀 이상 앞당겨 마감했다”고 밝혔다. 최종 입금액은 38억8500만원이며, 입금에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5778명이었다. 1인당 평균 67만원씩을 낸 셈이다. 목표액을 모으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총 52시간이었다. 펀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은 모두 7211명에 총 약정액은 45억2300만원이었으나, 이날 오후 4시 전까지 입금을 하지 못한 1433명(6억3800만원)은 펀드에 가입하지 못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최소액인 10만원을 입금한 사람은 모두 2868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10만원의 소액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유시민 당시 경기지사 후보가 처음으로 도입한 정치인 펀드는 후보자 개인이 적절한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 쓴 뒤 선거가 끝나고 갚는 사인 간의 금전거래 방식이다. 여러 제한이 있는 정치후원금과 달리 교사나 공무원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도 “빌려 쓴 돈에 대한 이자가 법정이자율과 비교해 현저히 낮지 않으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확인한 바 있다. 박 후보는 9월 중순 기준으로 3개월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인 연 3.58%의 이자를 붙여 오는 12월25일 이전에 되돌려 줄 계획이다.
박 후보 쪽은 이번 펀드 모금이 선거자금 해결은 물론 펀드를 통해 충성도가 높은 지지자들을 모아내고, 홍보 효과도 톡톡히 거두는 등 1석3조의 효과를 봤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 후보의 공식 누리집인 ‘원순닷컴’의 펀드 게시판에는 서울시민뿐 아니라 전국에서 박 후보를 지지하며 “곗돈을 보냈다”, “인도여행 갈 돈을 보냈다” 등 갖가지 사연이 1500개 가까이 올라와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외국에서 돈을 보낸 이들도 있었다. 한때 박 후보 캠프 내부에서는 최소 금액을 1000원이나 1만원으로 해서 시민들의 참여를 늘리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돈을 빌리고 이자를 준다는 개념에 충실하기 위해 최소 약정 금액을 10만원으로 정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유시민펀드는 최소금액 30만원으로 법정선거비용인 40억7300만원을 모았는데, 당시 억대의 돈을 투자한 ‘슈퍼개미’가 있었고 이번 박원순펀드에도 5000만원을 내놓은 투자자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 쪽은 모금한 돈을 단기간 예치해도 높은 이자율을 적용받는 어음관리계좌(CMA)에 입금해, 펀드 가입자에게 되돌려주는 이자 비용도 최소화할 계획이다.
* 참조글 :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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